“민원은 불편하다”는 편견을 깬 수원특례시 , ‘폭싹 담았수다! 시민의 민원함’ 100일 성과와 변화


"소통으로 민원 행정 혁신"

 

(한국글로벌뉴스 - 박소연 기자)행정에서 ‘민원’은 종종 불편함과 번거로움의 대명사였다. 요구하는 시민은 절차와 시간에 지치고, 처리하는 공무원도 복잡한 규정과 부서 간 이해관계에 막혀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수원시가 선보인 ‘폭싹 담았수다! 시민의 민원함’은 이런 고정관념에 균열을 냈다. 조선시대 백성이 직접 억울함이나 건의를 전달하던 ‘상언(上言)’과 ‘격쟁(擊錚)’ 제도에서 착안, 현대 행정에 맞게 재해석한 시민 참여형 민원 시스템이다.

 

생활 현장의 ‘가려운 곳’을 긁다

 

지난 8월 7일, 수원시 입북동의 ‘벌터’ 마을. 30년 넘게 상수도와 도시가스 없이 지내온 전상옥(71) 씨는 수원시가 수도·가스 연결 공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에 “길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전 씨는 지하수를 식수로 쓰고, LPG 가스통을 배달받아 생활했다. 동절기마다 가스가 떨어질까 불안했고, 생활의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 씨의 사연이 해결의 물꼬를 튼 건 지난 6월 12일,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폭싹 민원함’이었다. 전 씨가 작성한 신청서 한 장은 시청의 다부서 합동 검토를 거쳐 100일 만에 10년 묵은 민원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었다.
수원시는 인근 도로공사 일정과 연계해 수도·가스관을 동시에 설치하기로 결정, 연내 완공을 약속했다.


 

 100일간 1,657건… ‘제한 없는’ 접수와 신속 대응

수원시는 5월 1일부터 시청·구청·44개 동 행정복지센터 등 50곳에 민원함을 설치하고, 온라인 플랫폼 **‘새빛톡톡’**과 연계해 누구나 형식 제한 없이 민원을 접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8월 11일까지 100일간 총 1,657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분야별로는 △안전교통 501건 △도로건설 270건 △공원녹지 247건 △도시환경 346건 △문화·체육·교육 86건 △복지 50건 △행정 108건 △기타 49건이었다.
민원 서류에는 손글씨 지도, 자로 그린 도로 계획 등 시민들의 ‘진심’이 묻어났다.


 ‘민원 회신’에서 ‘민원 동행’으로

수원시의 폭싹 민원 시스템은 **‘즉시 응답’**과 **‘끝까지 동행’**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접수 즉시 감사 메시지를 발송하고, 매주 민원컨설팅TF 회의를 열어 다부서 협업으로 우선순위와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대표 사례로, 원천동의 버스 배차·정류장 이전 요청 민원은 두 차례에 걸쳐 단계별 답변과 향후 계획을 안내해 신뢰를 얻었다.
또 수인선 상부공원 화장실 설치 민원은 기존에는 ‘불가’로 답변됐으나, 폭싹 민원 재접수 이후 **‘탄소중립 그린도시 사업’**과 연계해 추진이 결정됐다.


 시 권한 밖 민원도 ‘대신 해결’

혼인신고 간소화 요청처럼 중앙부처 권한에 속한 사안도, 수원시는 ‘관할 아님’으로 끝내지 않았다. 국무조정실 규제개혁 신문고를 통해 개선과제를 건의하고, 진행 상황을 민원인에게 공유했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민원은 단순히 불편을 해소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책 씨앗”이라며 “행정이 움직이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협업으로 풀어낸 생활 민원

신호등·횡단보도·단속카메라 설치 등 교통 민원은 시 교통정책과와 경찰서 간 협업으로 신속히 진행됐다.
환경·위생 민원은 담당 부서가 직접 현장을 찾아 지속 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각 구청도 쓰레기 무단 투기, 악취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데이터 기반 ‘맞춤형 시정’으로 진화

수원시는 폭싹 민원함을 통해 수집한 민원 데이터를 지역별·유형별 분석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장기 정책 방향을 설계하고, 민원 유형별 선제적 대응 모델을 만든다.

향후에는 △민원 처리 전 과정 온라인 공개 △동별 현안 모니터링 △시민 참여형 정책 제안 플랫폼과의 연계 등을 구체화해, ‘민원 처리 도시’를 넘어 **‘시민과 함께 정책을 설계하는 도시’**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의미와 과제

전문가들은 이번 시도의 의의를 “민원 처리 과정의 투명화·속도화”에 둔다. 행정학자 김 모 교수는 “기존 민원은 ‘처리’가 목적이었다면, 수원시는 ‘응답’과 ‘동행’을 전면에 내세웠다”며 “이는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간 신뢰 구축에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인력·예산 확보, 처리 속도 관리, 미해결 민원의 단계별 공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수원 시민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더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시민의 민원함을 운영했다”며 “민원을 처리하는 도시가 아닌 ‘정책의 씨앗’ 삼아 시민과 함께 해답을 찾아가는 도시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